페르시아 제국 하면, 웅장한 느낌이 떠오른다. 이 당시에 이븐 시나라는 철학가가 있었다. 이븐 시나를 알아보고 우리삶에 적용할 수 있는 철학들을 살표보자.
이븐 시나 또는 푸르시나 는 페르시아 제국의 철학자이자 의학자로 중세 최대 의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철학과 의학을 집대성하였으며, 후대의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븐 시나는 980년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도시인 부하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10세의 나이로 꾸란과 아라비아의 많은 시문들을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났다. 그 후로 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배우다가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스승들의 수준을 뛰어넘자 18세가 될 때까지 몇 년간 독학을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형이상학을 40회나 정독할 정도로 학문에 열의가 깊었다. 21세에 그는 정식 교육을 모두 마쳤고 그때부터 이미 뛰어난 의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죽고 그가 종사하던 사만 왕조가 카라한 왕조에 의해서 부하라를 잃고 패주하자 그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그는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학문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페르시아의 여러 도시들을 떠돌아다니다가 카스윈에서 다시 의사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어느 곳에서도 그가 학술적인 일을 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는 곳은 없었다. 그는 부이 왕조의 통치하에 있는 하마단에 도착해서야 통치자의 호의를 받으며 그 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치유의 서와 의학 전범의 저술을 시작하였다.
1022년에 그를 총애하던 통치자가 돌아가신 후 그는 많은 고난을 겪었고 결국은 이스파한으로 이주하였고, 그 곳에서 환영받을 수 있었다. 이스파한에서 그는 치유의 서와 의학 전범의 저술을 마칠 수 있었고 그 뒤로도 저술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전쟁 수행 요원으로 출병하였다가 병에 걸려 1037년 하마단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븐 시나는 아라비아 철학이 회고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플라톤을 가미한 철학으로 이슬람 신앙을 해석하였는데, 이는 12세기 후반 유럽의 아리스토텔레스 부흥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논리학에도 영향을 끼쳐 이후 보편논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심리학에 있어서 영혼의 기능을 분리한 것은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의 표준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프란체스코파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그는 당시 연금술사들이 신봉하던 금속 변환의 가능성을 부정하였다, 그는 자연과학 분야에도 관여하였다. 그는 금속의 차이는 매우 심오하기 때문에 연금술사들이 만든 귀금속은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음악의 화성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수학, 물리학을 연구하기도 하였고 천문 기구를 고안하기도 하였으며 광물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하였는데, 이는 이후 중세 유럽에 전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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